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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의 기록

저녁에 하는 샤워

Photo by Patrick Hendry on Unsplash

요 며칠 저녁에 샤워를 한다. 머리까지 감고 말리고 잔다. 덕분에 아침에 잘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저녁에 샤워하고 머리를 감는 게 두피 건강에 좋다던데. 두피 건강 때문에 저녁에 씻는 건 아니다. 

사실 저녁에 샤워하기 귀찮다. 그래서 원래는 아침으로 귀찮은 일을 미뤄버렸다. 그런데 최근 저녁에 하는 샤워의 장점을 발견했다. 바로 일과 삶을 분리해준다는 점이다. 사무직 특성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한다. 집에 돌아오고 나면 컴퓨터는 꼴도 보기 싫다. 허리를 90도로 세워서 앉는 자세부터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집에 오면 잽싸게 침대로 달려간다. 앉는 자세는 거부한다. 무조건 눕는다.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응, 난 오늘 너무 앉아 있었어. 일하느라 힘들었음. ㅇㅇ 좀 누워 줘야 해.

몸은 편하다. 하지만 마음은 괴롭다. 퇴근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계획만 수십가지다. 일기도 쓰고, 영어 아티클도 읽고, 책도 읽고, 재테크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가계부도 정리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누워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또한 컴퓨터 앞이든 책상 앞이든 앉아야 한다. 그런데 앉기가 싫은 거다. 두드러기가 날 것 같고 막. 어후. 거부 반응처럼 머리가 정지된다.

굳은 머리를 깨워 주는 행위가 바로 샤워다. 마치 쉼 없이 달려오던 뮤지컬 1부의 막을 내리고 중간에 쉬는 20분 같은 느낌이다. 한 번 끊어 주고, 물도 마시고, 재충전도 좀 하고. 씻고 나오면 일단 개운하다. 덕분에 새로운 하루의 2막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

그래서 요즘 미는 퇴근 후 패턴은 이렇다:
집 도착 → 약간 뒹굴 → 운동(홈트/달리기) → 샤워 → 컴퓨터 앞에 앉기 → 이후는 자유

마라톤 완주도 결국 양말 신기부터 해야 한다. 일단 뭐라도 시작하고 패턴을 만들면 결과가 뒤따르지 않을까. 요즘엔 일기를 쓰고 있다. 오늘도 일기 다 썼으니까 자기 전까진 책을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