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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의 기록

백예린의 노래를 들으면 6년 전 뉴욕 롱아일랜드 롱비치에 혼자 바트를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long beach board walk

  1. 바닷가 부두를 따라 걸었다. 햇살을 받으며 데크를 걸었다. 중간에 비어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았다. 가져온 공책과 색연필을 꺼내서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생각보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과 현실이 이렇게도 다르다는 것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현실로 드러났다. 그 상황이 웃겼다. 누가 지나가면서 볼까봐 공책을 빠르게 덮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2.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러 나온 가족,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아빠, 다소 짧고 편안한 차림으로 여름스러운 봄 햇살을 만끽하는 사람들, 선글라스를 끼고 바닷가를 유유히 걷는 사람들. 그와중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완벽하게 타인으로 그 장소에 섞이지 못한 채 나는 존재했다.

a cafe in manhattan

  1. 뉴욕에 있던 그 시절, 맨해튼 주요 관광지는 모두 가 보았다. 그중에서도 현대미술관, 하이라인이 떠오른다. 소호 거리와 그곳에 있던 유기농 음식을 파는 고급 식료품 가게까지. 돈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체력과 시간이 있었다.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밤새 일하고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1. 우리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 순간은 나중에 무슨 짓을 해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황금같은 시간과 경험이라는 것을. 어쨌든 우리는 주말 내내 맨해튼에 있었다. 세계적인 도시에서 현지인과 함께 주말을 보낸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크게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꿈같은 시간이었다.
  2. 벌써 6년이 지났다. 이제는 내가 정말 그곳에 있었는지도 희미하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10년이 지날 것이다. 10년 뒤에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여행으로 말고 다시 한 번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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