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닷가 부두를 따라 걸었다. 햇살을 받으며 데크를 걸었다. 중간에 비어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았다. 가져온 공책과 색연필을 꺼내서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생각보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과 현실이 이렇게도 다르다는 것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현실로 드러났다. 그 상황이 웃겼다. 누가 지나가면서 볼까봐 공책을 빠르게 덮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러 나온 가족,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아빠, 다소 짧고 편안한 차림으로 여름스러운 봄 햇살을 만끽하는 사람들, 선글라스를 끼고 바닷가를 유유히 걷는 사람들. 그와중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완벽하게 타인으로 그 장소에 섞이지 못한 채 나는 존재했다.

- 뉴욕에 있던 그 시절, 맨해튼 주요 관광지는 모두 가 보았다. 그중에서도 현대미술관, 하이라인이 떠오른다. 소호 거리와 그곳에 있던 유기농 음식을 파는 고급 식료품 가게까지. 돈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체력과 시간이 있었다.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밤새 일하고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 우리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 순간은 나중에 무슨 짓을 해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황금같은 시간과 경험이라는 것을. 어쨌든 우리는 주말 내내 맨해튼에 있었다. 세계적인 도시에서 현지인과 함께 주말을 보낸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크게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꿈같은 시간이었다.
- 벌써 6년이 지났다. 이제는 내가 정말 그곳에 있었는지도 희미하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10년이 지날 것이다. 10년 뒤에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여행으로 말고 다시 한 번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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