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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 본 것

책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발췌

76쪽
국민주권이라는 허구가 있어야 정치적 소외감을 견딜 수 있다. 주권은 흡연과도 같다.

77쪽
역사가 에드먼드 모건이 보기에, 주권이 왕에게 있다는 말만큼이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도 허구다.

77쪽
현대의 대의정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주권이라는 허구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허구가 필요하다. ... 허구는 삶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하다. ... 인간이 삶의 허구를 버릴 수 없다면 허구와 더불어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허구는 사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거짓말이나 궤변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허구는 삶의 필요가 요청한 믿음의 대상이다. 

80쪽
국민을 앞세운 이러한 정치 게임이 정착된 것은 국민주권설을 헌법의 첫머리에 명시했기 때문이다. 헌법의 첫 부분이야 말로 그 사회가 픽션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합의한 것들의 만신전pantheon이다. 헌법을 고민한다는 것은 단순히 권력 구조를 고민하는 일일 뿐 아니라 정치적 픽션을 고민하는 일이기도 하다.

91쪽
<춘추좌씨전>에는 다음과 같은 작자 미상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느긋하게, 헤엄치듯, 그럭저럭 세월을 마치는 것, 그것이 지혜로다."

92쪽
비계가 있어야 삼겹살이 완전해지듯, 정치가 있어야 삶이 완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