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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 본 것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읽고

출처: YES24

최근에 눈 마사지기를 샀다.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를 열어서 눈 마사지기를 착용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마사지기와 내 눈알 위치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마사지기는 내 눈알이 아닌 관자놀이 열심히 지압해 주었다. 뭐지, 나 일반적인 눈 위치가 아닌건가.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고맙게도 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금까지 '누구'를 논할 때 여성은 깔끔하게 배제되어왔다고. 여성에 대한 고려 없이 사회는 계획되고 구성되어 왔다고. 그 범위는 광범위하다. 계단의 크기, 피아노 건반의 크기, 옷에 달린 주머니 크기처럼 일상적인 부분부터 약의 효과성을 검증하는 임상 실험, 기업의 자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 폭설로 인한 도로 복구 작업 순서 등 사회적인 부분까지 사람을 위한 거의 모든 일을 고려할 때 최근까지 '여성'은 없었다.
솔직히 그동안 젠더 문제에 관해 큰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여성이지만 여성이 특별히 불평등했는가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책 초반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너무 모든 걸 여자, 남자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건 아냐?'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논의에서 여성이 빠져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어떠한 불평등과 차별을 현재까지도 여성들이 감수하고 있는지를 무수한 통계와 연구 수치를 들어 조목조목 알려 주기 때문이다. 팩트 폭격 앞에서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이 정도면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저자는 너무도 당연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어색한 상식들을 하나씩 조명한다. 예를 들어 '원래 과학은 남자가 더 잘하지 않나요? 실제로 유명한 천재적인 과학자는 다 남자던데요?'라는 '상식'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자들은 정말 모든 것을 제쳐두고 실력과 업적이 뛰어났기 때문만일까? 예전부터 여성은 학문으로부터 사회적으로 배제 당해왔다. 심지어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돌연변이 정도의 취급을 받을 뿐, 그 능력을 더 키워보라고 장려받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명한 여성 과학자는 존재했더라도 다른 남성 과학자들만큼 유명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맥락이 고려받지 못한 채 단순히 '남자가 과학을 더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미래다. 갈수록 데이터가 중요해지고 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를 활용해 의사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의 젠더 공백과 불균형이 미칠 파급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가장 큰 비극은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받아들여지는 차별과 불평등일 것이다.
최근에 한 뉴스 기사에서 '인공지능이 그린 헤엄치는 연어'라는 이미지를 보았다. 아래의 이미지다.

출처: 한겨레21

인공지능이 수집한 데이터에 살아 있는 연어는 없었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강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로서의 연어를 그릴 수 없었다. 이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객관적인 결과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연어는 일상적이고 쉬운 주제이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전문적인 분야의 데이터였다면? 과연 그 누가 그 결과가 비상식적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흔히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공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의, 진실, 사랑과 같은 가치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