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하프마라톤 완주, 그간의 달리기 여정
지난 주 토요일 2024 서울신문 하프마라톤에 참여해 생애 첫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 서울신문사에서 주최하는 하프마라톤이었다. 이 대회를 고른 이유는 순전히 날짜 때문이었다. 5월 중순의 마라톤. 너무 덥지도,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달리기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꾸준히 달리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6년 만에 하프마라톤을 완주한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6년이나 되었는데 이제야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느리다, 빠르다는 상대적인 척도이다. 나는 달리기를 할 때 다른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의 속도로 달릴 뿐이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마일스톤이 지난 주 하프마라톤이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건 2015년 샌프란시스코에 있었을 때이다. 내가 살던 곳은 선셋 지역의 작은 주택이었는데 4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바로 바다가 있었다. 집 근처 경전철 정류장에 서서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면 곧바로 바다가 보였다. 이렇게 말이다:
바다 바로 앞에 차도와 도보가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달렸다. 마침 같이 살던 룸메 언니가 러닝 경험이 있었다. 언니는 내게 함께 달리러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러닝을 해본 적이 없었다.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함께 나갔다. 당시 나에게 러닝의 개념이 얼마나 없었냐면 러닝하러 가자는 말에 에코백에 물을 챙겨서 나갔다. 당연히 제대로 달릴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길 위를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처음으로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해변을 매일 달릴 수 있는 환경은 정말 귀하다.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지금처럼 달리기에 흥미가 있지는 않았던 터라 해변 도로를 자주 달리지 않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지만 그때를 지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은 없었을 테니 크게 아쉽지는 않다.
러닝다운 러닝을 시작한 때는 콜마라는 지역에서 잠시 머무를 때였다. 당시 나는 인턴십을 구하고 있었다. 뉴욕의 어느 기관에 면접을 보고 결과 통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가 나면 당장이라도 뉴욕으로 가야 했다. 그동안 잠시 머물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단기로 숙소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마침 친구가 콜마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집 아주머니가 선의를 베풀어주셨다. 덕분에 친구가 살던 방에서 한 달 정도 얹혀 지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백수였다. 할 일도 없고 집에만 있자니 답답했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다. 공동묘지 주변을.
콜마는 바다와는 먼 내륙이었다. 독특한 점은 그 도시 대부분이 공동묘지였다. 말이 공동묘지지 막상 보면 그냥 넓은 공원 같았다. 샌프란시스코는 날씨가 대부분 좋았다. 햇살 화창한 날에 땀을 줄줄 흘리며 공동묘지 안팎을 달렸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흙을 둥글게 쌓지 않고 땅에 비석만 꽂는다. 어느 날은 나란히 놓여 있는 비석들을 하나씩 읽어 보았다. 대체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은 고인의 나이, 즉 태어난 연도이다. 그중에는 나와 동갑도 있었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아이도 있었다.
각자의 삶을 각기 다른 시점에 마감한 사람들. 그 사이로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열심히 두 다리를 움직이며 달렸다. 그러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숨쉬고 움직이는 건 결코 영원하지 않구나, 지금 이 육체와 삶도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어떻게 없어질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주어진 삶은 소중하며 매 순간을 귀하게 여겨야겠다.
그때부터였다. 달리기가 단순히 운동이 아닌 나 자신을 돌보는 일종의 수양의 역할도 하게 된 것이.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달리기를 이어갔다. 한 달에 1~2번 정도만 뛰다가 어느 순간부터 일주일에 1번, 2번, 3번... 점점 늘어났다. 달리기는 마음의 상념을 떨쳐내 마음을 정화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 되었다.
2020년에 들어서면서 달리기는 본격적인 취미가 되었다. 중간에 5k, 10k 마라톤을 한 두번 나갔었다. 그런데 어쩐지 하프마라톤은 좀처럼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달리기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 싫었다. 하프마라톤을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그 자체가 좋아서 달리고 싶었다.
동시에 하프마라톤은 어쩐지 내가 이룰 수 없는 목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겁이 났다. 도전했다가 실패하거나 혹은 가까스로 완주하고 달리기에 질려버리는 순간이 올까봐서. 그렇게 나는 3년 정도를 어떠한 목표 없이 달렸다. 그냥 내키는 대로 달렸다.
그러다 작년 말부터 문득 '이제는 하프마라톤을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마음을 먹다가 올해 초에 하프마라톤에 덜컥 등록했다. 사실 이번 하프마라톤을 위해 특별히 더 연습하거나 훈련한 것도 없다. 다만 거리 감각을 느껴 보기 위해 20km는 한 번 뛰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딱 한 번 천천히 20km를 뛴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2시간 30분을 훨씬 초과했다. 그러고 지난 주 하프마라톤에 참여했고 2시간 18분에 완주했다.
하프마라톤에 참여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모두가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동시에 서로 힘을 주고받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평소 러닝 크루에 참여하지 않는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나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뛰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마라톤 대회에서는 특별히 누군가와 교류하지 않아도 '함께' 한다. 달린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 동질감을 느끼며 응원한다. 나와 같은 길을 나아가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결코 외롭지 않은 싸움이구나 ' 하며 큰 위안이 되었다.
앞으로 마라톤 대회는 종종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을 쯤에 하프마라톤을 한 번 더 나가보고 싶다. 기록을 단축하기보다는 완주를 목표로, 색다른 코스를 뛰어 보고 싶다. 바람 선선히 부는 날, 오직 제압할 상대는 자기 자신뿐인 곳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 고조되는 기분을 또 다시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