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것, 본 것

책 <좋은 기분>을 읽고

세상슴슴 2024. 2. 12. 16:39

1.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친구에게 이 책을 온라인으로 선물했다. 그 친구는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고 싶어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라면 꼭 이런 생각이 어울리는 가게를 차릴 것 같다.

2. 일을 대하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생각할 수 있었던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작가가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에 관해 설명한 책이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일과 삶을 돌보는 태도가 되는 걸까? 궁금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했다. 일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삶을 대하는 태도로 연결된다는 것, 손님을 대하는 일을 하며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인생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2-1. 대학 시절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을 대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솔직히 손님이 없으면 땡큐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손님이 없길 항상 바란 건 아니었다. 없으면 좋고, 있으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라는 단편적인 인식만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손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가게 전반에 대한 인상을 형성한다라는 생각은 아무래도 단순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2-2. 지금 일하는 회사, 전에 일했던 회사에 대입해 보았다. 전에 일했던 회사는 지금보다는 좀더 사람을 대할 일이 많았다. 회사를 소개할 일도 많았고, 회사를 대표해 어떤 생각을 전달할 일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회사의 화신으로서 행동했다. 나의 인상과 태도, 성격까지도 회사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무언가가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회사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을 동일시하여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한 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2-3. 전에 회사에서 대하던 사람들은 주로 '회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 밖의 사람들이거나 회사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었다. 반면 지금 회사는 '회사 내 사람들'을 주로 대한다. 회사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각자의 방식대로 회사에 대한 이미지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는 이런 걸 설명한다: 회사 내에서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를 달성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협상을 해야 하는지를 설파한다.

회사 안에는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수많은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이 프로젝트는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따라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물론 설득한다고 온전히 설득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이전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정해져 있는 우선순위에서 더 낮은 우선순위가 되지 않기를, 비록 회사 입장에서는 내 프로젝트가 우선시되지 않더라도 작업자들 마음 속에서만큼은 조금이라도 더 우선시되기를 바랐다. 

2-4. 결국 나 또한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한다. 비록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제품을 사려는 고객은 아니지만, 회사 내 협조를 이끌어 내야 하는 '내부 고객'을 대상으로 일한다. 아이스크림처럼 즉각적인 '좋은 기분'을 주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와 함께 일함으로써 이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신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들의 '좋은 기분'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3. 책을 읽으면서 일의 전문성에 대해 생각했다. 전문성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작년 회사 통근 버스 기사 아저씨다. 내가 이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고 첫 통근 버스를 탔을 때부터 약 3~4개월 정도 운행하시던 기사님이다.

기사님은 항상 깨끗한 하얀색 와이셔츠에 넥타이, 장갑을 끼고 계셨다. 기사님 앉은 좌석 창문 뒤편으로는 항상 여분의 와이셔츠가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버스 내부 또한 기사님의 성격을 반영하듯 늘 청결했고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모든 손님이 버스에 탑승을 마치면 버스 내부 조명을 부드럽게 껐고 도착하기 몇 분 전에 다시 부드럽게 켜셨다. 버스에 탑승해서 앉아서 회사까지 가는 그 모든 여정이 무엇 하나 거슬림이 없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운전 또한 인상적이었다. 통근 버스를 타본 사람이라면 공감하듯 출근 시간 도로는 정말 무자비하다. 급정거, 급발진, 끊임없는 경적 소리가 일상이다. 그때마다 기사님은 언제나 침착하게 최대한 부드럽게 운전하셨고, 단 한 번도 기분 나쁜 한숨이나 욕을 내뱉지도 않으셨다. 시간에 맞게 회사에 도착하는 것뿐만 아니라 버스에 탄 승객들을 고려해 도로 위의 긴장감을 버스 내부로까지 끌고 들어오지 않는 그 태도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운행을 하던 그 날도, 기사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시에 오셨다. 버스에 손님이 모두 탑승하자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 앞쪽에 오시더니 오늘 마지막 근무를 하게 되었다, 감사했다며 고개 숙여 짧게 인사하시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운전하셨다.

그 이후로 수차례 통근 버스 기사님들이 바뀌면서 깨달았다. 통근 버스가 항상 정시에 오는 것은 아니며 비나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도로 상황 악화로 30분 넘게 밖에 서서 덜덜 떨며 기다릴 수 있다는 것, 버스 안에서 담배 쩐내가 날 수 있다는 것, 기사님들은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든 반바지든 원하는 옷을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것, 오늘까지만 일하고 당장 내일부터 기사님이 바뀌어도 손님들에게 굳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분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일의 전문성이 무엇인지를 몸소 깨달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고, 그것이 만드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똑같은 일을 해도 절대로 똑같을 수가 없었다.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해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 그것이 전문성이다. 

3-1. 요즘은 흔히 '커리어'라는 단어로 일의 전문성을 말한다. '이 일은 내 커리어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커리어가 화려하다', '커리어와 맞지 않는다'처럼 '커리어'는 기존에 내가 해오던 일들 혹은 그 일의 나열을 뜻하는 맥락에서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쓰임에서 보듯 '커리어'라는 단어는 단순 사실 나열에 불과하며, 그 일을 할 때 내가 했던 생각과 의도는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일의 전문성'이란 해오던 일 그 자체가 아닌, 그 일을 왜 했고, 어떻게 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나는 '커리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일의 전문성에 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그로 인해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전문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작가는 자신의 일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이다. 

4. 다음에 시간 내어 녹기 전에를 꼭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