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
어쩌다 보니 이번 달은 100km 넘게 달렸다. 아마도 처음일 거다. 한 달에 100km를 달린 건. 개인적으로 꽤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나는 왜 달릴까. 사실 이유가 없다. 그냥 뛰고 나면 기분이 좋아서 뛴다. 원대한 목표 같은 게 없다. 올해 안에 하프 마라톤을 뛰겠다던지 3년 내로 마라톤을 완주하겠다던지 그런 목표가 없다. 물론 막연히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그걸 위해 계획하고 준비한 적은 없다.
습관에 관한 어떤 책에서 저자가 말했다. 습관은 정체성과 연결된다고. 나는 나의 정체성을 달리는 사람으로 정의했고 그래서 습관처럼 달린다. 마라톤을 완주하겠다는 목표로부터 습관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멋진 마라톤 메달을 얻는 대신 나는 평생의 취미를 얻었다.
달리기가 좋은 이유는 참 많다. 그중 가장 좋은 점은 각자의 속도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너무도 당연하다. 뒤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 전속력으로 얼마간 질주하다 멈춰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린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내가 누군가를 앞질러 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추월당하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그런다고 해서 특별히 판도를 바꾸기 어렵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추월당하고 나서 순간적으로 더 빠른 속도를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체력을 거스르는 속도는 얼마 가지 못한다. 곧 다시 제자리를 찾거나 잠시 멈춰 서게 될 뿐이다.
누군가에게 추월당할 때 멀어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렇게 빠르게 뛰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지금 저렇게 빨리 뛸 수는 없지만 결국에는 저 사람이 지난 길을 나 또한 지나겠지. 어쩌면 길 어느 중간에서 잠시 쉬고 있는 저 사람과 마주할 순간도 있으려나.
달리기를 하면 앞지르는 것도, 추월당하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이름 모를 누군가와 비슷한 속도로 오랫동안 함께 뛰기도 한다. 무엇이 맞고 틀리고는 없다. 그냥 달리기란 원래 그런 것이다. 각기 다른 속도의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의 도전을 진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