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의 기록
수다쟁이 내 동생
세상슴슴
2023. 3. 16. 22:40

내 남동생은 수다쟁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보통 동생과 엄마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 누나 왔어? 피곤한 누나는 방에 문을 닫고 들어 간다. 내 방은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덕분에 거실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다 들린다. 방문 너머로 동생이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간히 엄마와 동생의 꺌꺌꺌 경망스러운 웃음 소리가 들린다. 나는 방에서 혼자 그 화목한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 있는다. 집안의 화목에 동참하지 않는 것 같아 어쩐지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조악한 방음 덕분에 나 또한 그 자리에 함께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덕분에 덜 미안하다.
동생은 참 다정하다. 일하느라 온몸이 쑤시는 엄마에게 살갑게 다가가 마사지를 해준다. 팔도 주물러 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고. 이런 저런 얘기도 한다. 아니, 엄마. 솔직히 이런 아들이 어딨냐? 이렇게 매일같이 자기 전에 전신 마사지 해주는 아들이 어딨어.
동생은 마사지를 하며 자신 있게 생색을 낸다. 전부 다 맞는 말이라 얄밉지가 않다.
반면 나는 집에 오면 말이 없다. 그냥 조용히 누워 있거나 필요한 말만 한다. 한동안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집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야. 나는 언젠가부터 집안에서 살가운 역할을 포기했다. 대신 현실적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딸의 역할을 맡았다. 집안에 웃음꽃 피우는 재간둥이 역할은 동생에게 일임했다.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동생이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