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의 기록

날이 좋아서 10km

세상슴슴 2023. 3. 11. 22:23

 

달리기 할 때 꼭 갖춰야 하는 아이템들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러닝화. 가장 중요하다. 없으면 못 달리니까. 발 모양에 맞고, 뛰는 자세에 맞는 러닝화는 필수다. 그래야 오래 뛰어도 발, 무릎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운동 양말과 캡모자. 두툼하고 짱짱한 운동 양말은 발바닥에 가해지는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해 준다. 캡 모자는 날씨에 상관 없이 시야를 항상 확보해 준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는 물론, 낮에는 햇살이나 밤에는 바람으로부터 어느 정도 눈을 보호해준다.

셋째는 이어폰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어느 시점에 무선 이어폰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에 무선 이어폰들은 가격이 비쌌고, 스스로 그 정도 돈을 투자할 만큼 달리기를 자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에어팟 프로가 출시되고 나서 마음을 먹고 무선 이어폰, 에어팟을 샀다. 달리기의 질이 수직상승했다. 그 전까지는 줄 이어폰을 계속 사용했는데 사실 줄 이어폰은 불편한 점이 많았다.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달리는데 그때마다 댈랑거리는 이어폰이 매우 신경 쓰였다. 또한 이어폰 내구성 자체도 좋지 않아 어느 날 갑자기 한 쪽이 안 들리거나 하면... 그것만큼 화딱지가 나는 때가 없다. 에어팟 프로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주는 최고의 달리기 메이트다. 

오늘 유난히 저녁 날씨가 좋았다. 10키로를 달릴 마음을 먹고 옷을 갈아 입었다. 양말 신고, 모자 쓰고, 러닝화를 질끈 맸다. 마지막으로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어? 핸드폰과 연결되지 않는다. 불길한 예감. 아, 충전이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 초보 러너로 달린 구력(?)이 있다. 언젠가 이런 절체절명의 실망의 순간이 올 줄 알았다. 서랍 안쪽에 보관해 두던 줄 이어폰을 아주 오랜만에 꺼냈다.

오랜만에 댈랑거리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달렸다.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옛날 생각도 나고 음질도 생각보다 괜찮은데? 적당히 외부 소음이 들리는 것도 좋았다. 에어팟 프로를 꼽고 달릴 때에도 항상 주변음 허용 모드로 달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달리기 초반에는10키로를 아무 음악도 듣지 않고 달린 적도 꽤 많다. 그때 느낌은 도를 닦는 기분이었다. 규칙적인 숨소리, 발자국 소리, 주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달렸다. 솔직히 지금 하라고 하면... 자신은 없다. 어디 유럽의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유명 국립공원 정도면... 가능할 것 같기도.

오늘은 평소보다 몸이 가벼웠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은 왠지 평소보다 덜 지치고, 더 오랫동안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오는 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욕심을 내서 12키로 정도 달려볼까 싶었지만, 자칫 무릎에 무리가 갈 것 같았다. 다가올 달리기 좋은 계절을 생각하면 무릎을 아껴야 한다. 자주 달리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론은 오늘 10키로도 무사히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