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보고
13년만에 개봉한 아바타 후속작. 솔직히 아바타가 무슨 내용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상태로 보러 갔다. 다행히 영화는 나같은 관객을 배려해 주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아 맞다 남자 주인공 이름이 제이크 설리였지, 아 맞다 원래 해병이었지, 아 맞다 네이티리(제이크 아내, 솔직히 영화에서는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아서 너무 생소하다;;) 활솜씨가 장난 없었지, 아 맞다 1편 엔딩도 저 장면으로 끝났지 등을 차례로 깨닫게 된다.
줄거리를 설명하자니 영화 유투버들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서 기억에 남는 장면만 기록하고자 한다.
1. 임신한 채로 활을 쏘는 판도라 행성의 여인들
영화 시작부에서는 임신을 한 네이티리가 활을 쏘고, 영화 절정 전투씬에서는 로날(물의 부족 부족장 아내)이 임신한 몸으로 전투에 뛰어든다. 뱃속의 아이를 품고도 너무나 당연하게 부족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네이티리와 로날이 볼록한 배로 화살을 쏘고 창을 던지는 모습에서 아마존 신화가 떠올랐다. 아마존은 여성 전사들로 이루어진 부족이다. 그녀들은 화살을 쏘기 위해 화살촉을 당길 때 거슬리는 유방 한 쪽을 잘라냈다고 한다. 뱃속의 아이, 한 쪽 유방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감수될 수 있는 대상인 셈이다. 현대사회를 사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그토록 단단한 신념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갈 때의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다.
2. 단 몇 십 미리의 수액을 위해 거대한 툴쿤을 사냥하는 인간들
누군가 오래 살고 싶으냐?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늙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오래 살고 싶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화를 피하고 싶다. 영화에서 나오는 툴쿤의 뇌(?) 속에는 인간의 노화를 평생 멈추는 체액이 있다. 1리터 남짓의 체액은 영화 속에서 약 1천억 원의 가치를 지닌다. 인간들은 1리터 남짓의 체액을 뽑기 위해 뒷산만한 덩치의 툴쿤을 무자비하게 죽인다. 너무도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저 장면을 영화에 기필코 넣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툴쿤 사냥꾼들의 이야기는 영화 전개상 반드시 필요한 내용은 아니다. 그럼에도 해당 장면을 꽤나 오랫동안 잔인하고 슬프게 보여준다.
영화 속 툴쿤은 고도의 지적 생명체로 묘사된다. 인간보다도 정교한 신경망을 갖추고 특히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럼에도 툴쿤은 인간에 반격하지 않는다. 살육은 또 다른 살육을 부를 뿐이다. 고도의 지적 생명체가 경험으로 새긴 배움이다. 툴쿤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그저 묵묵히 몸으로 받는다.
영화 속 하늘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 인간을 의미한다. 그들은 툴쿤 뿐만 아니라 판도라 행성 자체를 그저 개발과 착취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그 사실은 이미 잊혀졌다. 인간은 지금 당장을 위해 모든 자원을 이용하고 소진한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폐수를 바다에 무단 방류하는 공장들, 몇 개월 입고 버려질 옷을 그저 싸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 끊임 없이 숲과 나무를 베어내는 기업들. 영화 속 이야기는 현실 그 자체였다.
3. 살육하는 툴쿤
툴쿤의 무리에서는 살육은 엄격히 금지되어있다.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 살육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추방당한 툴쿤 1마리. 그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자신을 공격한 인간을 죽였다. 이는 과연 정당한 조치였을까? 이 문제를 법에 대입해 본다면 매우 엄격한 법치주의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법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격이다. 법은 인간을 죽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잘 살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법은 멈추어져 있지 않고 살아 있다. 그 자체로 완벽 무결한 존재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살육을 저질러 추방당한 툴쿤은 결국 선이 악을 이길 수 있도록 돕는다.
4. 자연의 섭리
판도라 행성의 매력은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는 것이다. 대사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대략 이런 말이 나온다: 바다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죽어서도 존재한다. 바다는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고 모든 것의 끝을 받아 들인다.(?) 아바타1의 배경인 숲의 부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든 만물은 대지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그녀에게로 돌아간다. 그녀는 편을 들지 않고 오직 세상의 균형만을 맞춘다.
살다 보면 만사에 우위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것은 더 중요하고, 어떤 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삶 전체, 역사 전체의 관점에서 조망하면 인간 개인의 삶은 유한하며 언젠가는 없어진다. 이는 모두에게 공평한 사실이다.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다. 이 간단한 사실을 자주 잊고 지낸다. 이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실수를 범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고 진실로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5. 아들에는 아들, 아버지에는 아버지
제이크 설리 가족의 친구 중 유일한 인간 친구가 있다.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아무튼 그는 갓난 아기일 때 아버지로부터 버려졌다. 평생 아버지를 증오하며 살았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서 아버지를 차마 죽게 두지 못한다. 자신을 사지에 내몰았던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핏줄은 무엇일까. 지구 어딘가에 나와 피를 나눈 부모, 형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왜 그토록 인간에게 중요한 걸까. 물리적으로 같이 있지 않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주는 위안이 있는 걸까. 자신의 근원, 뿌리이기 때문일까? 뿌리가 없는 나무는 존재할 수 없듯이 뿌리를 모르는 인간은 한없이 부유할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다면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곳 저곳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